분명 소속된 세월의 차이가 너무 나서 감정 쓰나미의 강도가 다르지만
그래도 아빠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었던 어제.
빵을 25%할인으로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인사를 어느정도 마치고는 베이커리로 쓩~달려가서 몇가지를 골라왔더랬다.
차를 가져간 게 아니라서 대책없이 많이 살 수도 없었지만 할인을 해도 워낙 비싼지라 적당히만 고르고
맨날 지배인이 바껴서 얼굴만 가끔 본 사이지만 인사도 매우 깍듯하게(음 근데 가식은 아니다. 정말 고마웠다)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이 한입씩 먹어보고는 너무 맛있다고 난리가 났는데..
새로나온 빵도 있었지만 포카치아는 예전에도 산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첨 먹어본다며, 왜 이제까지 이런 건 안 골라왔냐는 얘길 들었다.
흠. 괜히 이제 이 가격에 못 먹는다고 더 맛있게 느끼는 건 아니고요? ㅋㅋ
그러면서 갑자기 든 생각은,
아...
그렇구나..
이젠 소속이 아니니까 이렇게 못 먹겠구나..하는 먹먹함이었다.
워낙 쉬는 동안 감정을 다 토해버려서 섭섭한 거 하나없이 더이상 그러기 힘들 정도로 홀가분하게 나왔는데, 한동안은 생각이 안 나겠다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는데
이 결정으로 인해 손 안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나타나니까
몇 분동안 걷잡을 수 없이 싱숭생숭해졌다.
이런거구나..
섭섭함이나 서러움 아쉬움 이런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뭔지 모르게 다른 허전함과 허탈함..
별 생각없이 갖고놀던 플라스틱 양동이를 해변에 두고온 걸 깜빡해서 찾으러 뒤돌아 가봤더니
밀물이 들어왔다가 썰물 때 나가면서 쓸어가는 바람에 없는 걸 발견한 기분이라면 이것과 좀 비슷할까.
대단히 소중한 건 아니지만 항상 갖고놀아서 손 안에 있는 게 당연한 정도의 존재감..
나올 때까지도 좋지 않았지만 그 동안 가는 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회사라는 존재..
막상 없어지니 사람 허전하게, 벙찌게 만드는 그런 것.
다행히 오래 가진 않았다.
오늘 아침 즈음 되서는 그런 기분이 없어졌으니까.
아마 "아빠가 이제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이 지워질 때 되서 그런가 통 힘이 없고 기분이 그러신가보다" 라며 응원밥을 만드시던 엄마가 본 그 때
아빠가 이런 기분이지 않으셨을까?
말로 설명이 잘 안 된다. 아마 무생물에 대한 느낌으론 부적절 할지도 모르지만 일종의 상실감인 것 같다.
나보다 여섯배나 더 되는 세월을 회사에서, 것도 어느정도 열심히 다닌 나와 달리 평생을 몸바쳐 최선을 다해 일했던 직장에서
이제 기록이 없어진다 할 때 올 허전함은 아마 이론과 달리 여섯배 정도가 아니겠지.
공감지수가 좀 높아진 것 같아 나도 약간은 성장한 것 같다.
안 성숙해져도 좋으니 고통 안 당했으면 좋겠다 싶은 나지만
이런 땐 참 어려움을 지났다는 데에 감사하게 된다.
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.